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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태권도 가교 정우진 사범 “WTF, ITF 도 아닌 태권도의 새역사”

06/28/2017

by 송고시간

 

1971년부터  미국에서  태권도  보급하며  전문지도  발간
“ITF  방한은  45년  만의  귀향이며  태권도의  영혼이  돌아오는  것”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이  23일  김포공항으로  입국할  때  정우진  태권도타임스  대표가  미리  준비한  피켓을  들고나와  시범단 맞을  준비를  하던  모습.  [연합뉴스]

 

(무주=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북한 주도로 발전한 국제태권도연맹(ITF) 대표단과 시범단의 역사적인 방한을 누구보다 감격스럽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미국 태권도 전문 잡지 태권도타임스의 대표인 정우진(74) 사범이다.

정 대표는 8박 9일간의 ITF 시범단 방한 일정을 이들과 함께한다. ITF 시범단이 입국하기 하루 전인 지난 22일 먼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뒤 시범단을 직접 맞이했다.

정 대표는 이번에 방한한 36명의 ITF 대표단과 시범단 명단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하지만 ITF의 요청으로 WTF가 그를 이번 행사에 함께 초청했다.

정 대표는 뿌리가 하나임에도 각각 한국과 북한 중심으로 나뉘어 성장해온 WTF, ITF 태권도의 교류 및 협력을 위한 가교 구실을 해온 인물이다.

정 대표는 1971년 단돈 35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오와 주 시더래피즈의 빈민가에서 태권도를 보급한 개척자다.

고생 끝에 태권도장과 피트니스센터를 연계한 사업으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고 1980년에는 ‘태권도를 통해 전 세계를 화합하자’는 생각으로 태권도타임스를 발간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조국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식량이 부족해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돕는 일을 시작한 그는 199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남북 태권도 통합을 위한 일에 뛰어들었다.

‘남과 북은 하나, 태권도도 하나’라면서 WTF와 ITF의 통합을 한결같이 주장해온 그는 1994년 재미 무도인들과 함께 당시 김운용 WTF 총재와 최홍희 ITF 총재는 통합의 절차를 밟고, 우리 정부는 이를 최대한 지원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나아가 2007년과 2011년에 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미국으로 초청해 뉴욕 등 5개 지역에서 공연하는 등 북미 관계 개선 노력에도 큰 힘이 됐다.

2007년 시범공연이 있고 나서 이듬해에는 답방 형식으로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에서 공연을 펼쳤다.

 

두산  천지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정우진  태권도타임스  대표. [정우진  대표  제공=연합뉴스]

 

ITF는 WTF보다 7년 앞선 1966년 서울에서 육군 소장 출신인 고(故) 최홍희 씨 주도로 창설됐다. 이후 최홍희 씨가 한국 정부와 갈등으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하고, 1980년부터 태권도 보급을 위해 북한에 사범들을 파견하면서 북한과 인연을 쌓아 ‘ITF는 북한 태권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2007년 ITF 태권도협회가 남한에서 사단법인 등록을 마친 것을 축하하고자 장웅 당시 총재를 비롯한 ITF 시범단이 방한해 시범공연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열린 WTF 행사를 위해 ITF 시범단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정 대표는 이번 ITF 시범단의 방한을 “(1972년 이후) 45년 만의 귀향”이며 “태권도의 영혼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최홍희 총재의 한도 조금은 풀릴 것 같다”고 했다.

정 대표는 ITF 9단이다. 최홍희 총재가 생전에 직접 9단으로 승단시키려 했으나 정 대표는 수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결국, 최 총재가 9단을 만들어놓고 세상을 떠난 뒤 후임 장웅 총재로부터 전달받았다.

또한, 정 대표는 국기원 8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 대표는 “나는 ITF 태권도인도, WTF 태권도인도 아닌 그냥 태권도인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ITF 시범단의 방한에 대해서도 “WTF도, ITF도 아닌 태권도의 새 역사”라고 강조했다.